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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의 역사

MARC은 왜 60년을 버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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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만들어진 데이터 형식이 아직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MARC 이야기입니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의 정보를 기계가 읽을 수 있게 적어 두는 형식인데, 196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뒤로 컴퓨터가 몇 세대를 갈아치웠고, 웹이 생겼고, 링크드데이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MARC은 아직 거기 있습니다.
며칠 전 한 국제 학회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발표를 들었습니다. 국내 연구자의 발표였고, 우리 목록규칙이 국제 표준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따진 자리였습니다. 거기서 나온 진단 하나가 계속 걸립니다.

오래 사는 이유가 갈아 끼울 수 없는 이유였다

목록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적을 것인가(내용규칙)와, 그것을 기계가 읽을 수 있게 어떻게 담을 것인가(인코딩 형식)입니다. 앞의 것이 AACR이었고 뒤의 것이 MARC이었습니다. 둘은 오랫동안 한 몸처럼 움직였습니다.
발표의 진단은 이랬습니다. MARC이 이토록 오래 버틴 것은 내용규칙과 딱 붙어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그 밀착이 양날이었습니다. 너무 잘 맞물려 있어서 MARC을 다른 것으로 갈아 끼울 수가 없었습니다. BIBFRAME 같은 대안이 나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칩니다. RDA는 특정 형식에 매이지 않게 설계됐는데, MARC이 계속 개정되면서 RDA를 MARC 안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굳이 갈아탈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MARC은 지금도 충분히 굴러갑니다.

새것은 반대 문제를 안고 있다

발표에서 가장 세게 나온 대목은 BIBFRAME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LRM이나 RDA와 긴밀히 맞물려 있지 않은 탓에, 출발선을 떠나기도 전에 발이 묶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MARC은 내용규칙과 너무 붙어서 못 바꿨는데, BIBFRAME은 충분히 붙지 않아서 출발을 못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두 표준을 맞대어 보면 그 틈이 드러납니다. RDA에서 「번안」과 「각색」처럼 나뉘어 있던 관계가 BIBFRAME에서는 하나로 뭉개집니다. BIBFRAME에는 표현형이라는 개체가 아예 없어서 표현형에 딸린 것들을 저작 쪽으로 밀어 넣어야 합니다. 아예 갈 곳이 없는 속성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에 정답은 없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어느 쪽이 옳은가를 따지고 싶어집니다. 저는 그 물음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표준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정답이 있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환경과 맥락에 맞아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든 다시 변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실무도 따라 변하겠지요.
MARC이 60년을 버틴 것은 MARC이 옳아서가 아닙니다. 그 60년 동안의 환경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디지털 환경이고, 앞으로 링크드데이터로 나아가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렇다면 표준도 실무도 변해야 합니다. 「MARC이 아직 충분히 굴러간다」는 사실은 안심할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물음표가 붙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 목록규칙도 새로 나왔습니다. KCR5, 2025년입니다.
이전 판이 구현형과 개별자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 무게를 두었다면, 새 판은 기술과 접근점과 관계라는 세 축으로 짜였습니다. 저작과 표현형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다만 국제 표준과 나란히 놓으면 갈라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KCR5에는 개념·사물·사건·장소가 개체로 들어 있지 않습니다. 공식 RDA가 비구조화·구조화·식별자·IRI 네 가지 기록 방법을 두는 데 비해, KCR5는 텍스트 문자열이 중심입니다.
발표 뒤 질의응답에서, 한국목록규칙의 요소들이 LRM이 마련해 둔 요소 안에 다 들어갈 수 있느냐는 물음이 나왔습니다. 답은 균형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쪽 요소 여럿이 저쪽 하나로 묶여 버린다고요. 그러자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남는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돌아왔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다만 저는 이것을 판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계획입니다. 이런 연구와 발표는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자리이지,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못 박는 자리가 아닙니다. 의견이 오간 것이고, 실무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180년 전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파니치가 1841년에 만든 91조 규칙1조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보게 됩니다.
표제는 모두 크기가 동일한 카드(슬립)에 작성할 것.
목록의 이념이 아니라 종이 크기가 첫 조항이었습니다. 단위가 균일해야 끼워 넣고 빼내고 다시 정렬할 수 있으니까요. 규칙과 그 규칙을 담는 물건은 처음부터 한 몸이었습니다. MARC이 60년을 버틴 이유도, 그래서 갈아 끼울 수 없었던 이유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18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이용자를 위해 만든다는 것, 그것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목록규칙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파니치가 알파벳 순서 하나에 그토록 집착한 것도, 익명서를 표제의 첫 낱말 아래 두자고 한 것도 결국 찾는 사람이 헤매지 않게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이용자가 원하는 방식입니다. 그때는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목록을 뒤지는 것이 서비스였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찾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180년 동안 이용자가 늘 같은 방식으로 요구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변해야 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MARC이 60년을 버텼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60년을 버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2026년 8월에 열린 한 국제 학회의 발표를 듣고 쓴 글입니다. 발표 내용은 제 생각을 세우기 위한 바탕으로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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