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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션 베이커의 <아노라>, 황금종려상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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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션 베이커의 <아노라>

황금종려상의 의미를 묻다.



 

최근 칸 영화에제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션 베이커(Sean Baker)의 신작 <아노라(Anora)>를 관람했습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독립 영화계의 스타감독이죠. 그의 영화는 대체로 사회적 약자와 주변부 인물들을 조명하며,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연출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아노라>는 칸의 심사위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의문점과 논쟁거리를 동시에 던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도? 낯선 거칠음?

<아노라>는 전통적인 영화 문법에서 벗어나 독특한 연출 방식을 과감히 시도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칠고 감각적인 화면 구성입니다. 망원렌즈로 압축된 이미지는 깊이를 강조하면서도 자유롭게 프레임 안에서 움직입니다. 헨드헬드 카메라의 흔들림과 결합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구요. 이 기법으로 관객을 인물들의 내면으로 더 깊숙히 끌어들이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듭니다.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그리고 심리극의 요소가 얽히며 독창적인 색채를 띄는데, 초반 보여진 거친 화면은 스릴러 또는 심리극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칸의 심사위원들이나 영화적 지식을 갖춘 이들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신선하고 새로울 수 있겠으나, 일반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장르 혼합은 매끄럽기 보다는 일종의 충돌로 느껴지겠죠. 멜로의 감성에 스릴러 요소를 덧붙이고, 다시 코미디적 요소를 붙여 끌고 가려는 시도가 영화의 서사적 통일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관객들은 어느쪽에 손을 들까요?

 

 

 

 

 

디테일 속의 섬세함과 불편함

션 베이커의 영화는 디테일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영화 초반 스트리퍼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은 의미 전달에 비해 좀 지나쳤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주인공 애니와 이반이 섹스 장면에서 아버지의 하수인들에 의해 방해를 받는 장면이 있었는데, 섹스 도중 문 쪽으로 걸어가는 이반의 아랫도리가 너무나 디테일하더라구요. 그리고 이반의 성기는 꼭 노출이 되어야 했을까;; 의문을 가져봅니다. 

 

디테일뿐만 아니라 영화적이 요소도 꽤나 잘 활용했습니다. 특히 애니가 이반과 이혼을 한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 장면에서, 뒷자석에 어린아이가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애니의 속마음을 표현해주는 것 같아 장면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집에 도착해서도 샤워할 때 물 떨어지는 소리들도 그런 애니의 마음을 나타내는데 좋은 역할을 해준 것 같습니다. 애니가 그냥 펑펑 울기보다는 이렇게 비유적으로 풀어내는게 션 베이커라는 감독이 영화를 잘 풀어내는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사랑의 비유, 혹은 클리셰?

<아노라>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그 방식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진부한 스토리라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신분차이와 금지된 사랑,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받는 여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이미 수많은 서사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구조입니다. 특히, 한국드라마에서 흔히 다뤄지던 클리셰와 유사한 점이 많아 참신함보다는 낡은 서사로 느껴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적인 예로, 애니가 이반에게 청혼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철저히 이반을 배제하고 오직 애니의 표정에만 집중합니다. 이 연출은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훌륭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이후 벌어질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며 관객에게 지나치게 예측 가능한 서사적 흐름을 제공합니다. 이는 관객이 작품의 의도를 파악하기 이전에 영화가 스스로 메시지를 노출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더욱이, 영화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야기는 설득력을 점차 상실합니다. 애니와 이고르가 함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내러티브 상의 맥락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 또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캐릭터의 감정선이 혼란스럽게 느껴지게 하며, 이야기 전반에 걸쳐 구축된 연출의 설득력을 약화시킵니다. 이혼 당했는데, 굳이 이제는 남이 된 그 남자 집에서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을까요? 저라면 그냥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짐만 찾아 나왔을 것 같습니다.

 

결국 영화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보편적이고 단순한 주제로 귀결되는데, 이는 초반부의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연출과 비교했을 때 평이하고 고루한 결말로 다가옵니다. 작품이 전달하려는 의도가 명확하지 않거나 중심을 잃는 순간, 관객은 영화의 메시지보다는 그 허술한 구성에 주목하게 되는 법입니다. <아노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영화로 평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노동자의 시선을 담는 데 실패한 시선

<아노라>는 성노동자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냈는지에 대해 의문을 남깁니다. 션 베이커는 애니라는 인물을 통해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랑의 의미를 탐구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덕적 교훈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애니가 이반에게서 이고르로 감정을 옮기는 과정은 성노동자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강조하기보다는, 마치 "성적으로 우선 접근하여 금전적인 이익을 쫒는 너의 방식은 잘못되었고, 올바른 사랑은 이런 것" 이라는 메시지를 던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성노동자의 삶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보다는 감독의 관점을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또한, 영화는 클럽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착취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이를 극복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그저 관찰자의 시선에 머무릅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성노동자에 대한 반감을 조장할 여지를 남깁니다.

 

 

 

 

결론, 황금종려상의 의미를 다시 묻다.

<아노라>는 실험적인 연출과 세부적인 묘사에서 강점을 보이지만, 내러티브와 메시지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특히, 성노동자의 시선을 담는 데 있어 감독의 한계가 드러나며, 영화의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습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영화를 걸적이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노라>는 분명 독창적인 시도를 담은 작품이지만, 그 시도들이 항상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관객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시선이 진정성을 담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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